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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숙목사의 "마지막 동태찌개 한 그릇"(3)
남편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떠난 유방암 말기 환자
2018-08-05 10:22:47   [trackback]인쇄하기
기독교중앙뉴스 기자 / 조회수:1469
 

호스피스 최화숙 간호사(현재 은혜와사랑의교회 담임목사)의 아름다운 호스피스 실제 이야기. 강영실(50대 ․ 가명)씨는 유방암 말기 환자였는데 처음에는 가정 호스피스에 가입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 스승으로부터 말기 환자인데 어디 조용한 곳에 가 있고 싶어하니 연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 강영실 씨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곳에 자리(Bed)가 없어서 대기 환자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 동안만이라도 가정 호스피스에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두 번 정도 방문해서 조언해준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환자와 가족의 마음이 바뀌어 아예 가정 호스피스에 등록하여 끝까지 보살핌을 받았다.

강영실 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호스피스에 등록할 당시에 그녀는 폐와 골은 물론이고 뇌에도 전이되어 왼쪽 눈을 감으면 뜨지 못하고 뜨면 감지 못하는 상태였다. 스스로 떴다 감았다 하지 못해서 낮에는 안대를 하고 있거나 렌즈를 끼고 있어야 했다.

통증 조절도 잘 안 되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약의 사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었다. 진통제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주고 이틀 정도 효과를 측정해보니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처방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씩 링거 주사도 주었다.

마침 호스피스 팀의 의사 부부가 강영실 씨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퇴근 후에 종종 들러 도움을 주었다. 또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강영실 씨의 교우 중에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분들이 있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문해주기로 했다. 강영실씨 부부는 고급 인력인 호스피스 요원들이 무료로 집을 방문해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영실 씨의 가족은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실직한 남편과 대학 2학년인 큰아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인 작은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강영실 씨는 자신의 병황(病況)에 대해 남편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던 그녀는 고 3인 아들의 대학 입시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혼자서 조용히 보내다가 죽고 싶었다고 했다. 기도원은 의료 시설이 아니라서 말기 환자가 가 있기에는 부담이 크고, 자신과 같은 환자들을 받아주는 간호요양소 같은 곳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정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고 보니 그냥 집에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해놓은 기관에 자리가 생겨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 강영실 씨가 집에 있고 싶어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남편과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이었다. 남편의 실수(외도)를 용서할 수 없었던 강영실 씨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도움은 더더욱 받고 싶지 않아 집을 떠나 있으려고 했다.

강영실 씨는 남편의 생활력이 약해 자신이 고생을 했다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자신이 장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 보니 때때로 그녀가 남편에게 몹시 짜증을 부리고 남편은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곤 했는데, 남편 말로는 부인의 성격이 지나치게 반듯해서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영실 씨의 남편은 아내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려고 애를 썼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다. 대학생인 아들도 어지간하면 집에서 아버지와 교대로 어머니를 돌보려고 했다.

입시생인 막내아들은 학교와 전공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는데, 강영실 씨는 누워 있으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아들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썼다. “1차로 지원한 곳은 다 탈락했고 이제 적당한 곳을 골라야 하는데…” 하며 고심을 하고 있었다. 강영실 씨는 뇌전이로 인해 가끔씩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러 가지를 꼼꼼히 따져본 후에 막내아들이 지원할 학교와 학과를 세 군데나 골라주었다. 그에 대해 남편과 막내아들도 동의해서 그렇게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루는 강영실 씨의 얼굴이 밝고 기쁨에 차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제가요, 오늘 동태찌개를 다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동태찌개라고 했다. 입맛이 없어졌어도 옛 맛이 생각나곤 했는데, 마침 옆집에 사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좀 먹어보라며 동태찌개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자원봉사자가 가지고 온 것은 한 공기 정도였고 강영실 씨가 먹은 것은 세 숟가락이었는데(그나마 국물만 먹고 건더기는 뱉어냈다)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환자가 기뻐하니 가족도 기뻐하고, 환자가 웃으니 가족도 웃었다.

사실 가정주부에게 찌개 한 공기는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친절과 배려가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에게는 큰 기쁨을 줄 수 있다. 호스피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강영실 씨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었으면 그 날 저녁의 찌개 한 공기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날 나는 호스피스 봉사는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강영실 씨는 그 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었다며 그렇게 좋아했으나, 다음날부터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문득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혈압도 떨어졌다.

그 다음날엔 가족들이 원해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혹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그것이 강영실 씨와 가족들이 함께 드린 임종 예배가 되고 말았다. 강영실 씨가 평소에 즐겨 부르던 찬송을 부르고 그녀의 남편이 즐겨 읽는 말씀을 함께 읽고 나서 마지막에 가족들을 둘러보면서 강영실 씨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라고 했다.

대학생인 큰아들은 “엄마, 엄마 없어도 내가 동생 잘 돌볼게요. 그리고 엄마가 선택해주신 대로 지원서 내도록 내가 옆에서 도와 줄 거예요” 하고 약속했다. 강영실 씨의 눈이 웃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엄마, 엄마가 그 동안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형하고 사이좋게 열심히 살게요. 그리고 엄마랑 약속한 대로 지원서 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작은아들이 말하면서 울자 강영실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여보, 사랑해. 그 동안 내가 철없는 행동으로 당신 마음 아프게 했던 것 미안해” 하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강영실 씨가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다. 바싹 말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이었다. 이미 혀가 말려들어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으며 “여보, 고마워. 당신이 있어주어서 고마웠는데 난 이제 어떡하지?” 하며 울었다. 그러자 강영실 씨가 남편의 손을 움켜쥐었다. 남편은 다른 한 손으로 강영실 씨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했어요. 이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애들 걱정은 말아요. 당신이 한 것만큼은 못하겠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돌볼게요.”

강영실 씨가 눈을 깜박였다. 아이들도 강영실 씨의 손을 잡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강영실 씨의 손을 잡아주고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집을 나왔는데, 그때가 밤 10시 20분이었다.

강영실 씨는 다음날 새벽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가족들 옆에서 잠자듯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중에 강영실 씨의 남편은 유가족 모임에 와서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집사람이 아파서 누워 있던 몇 달 동안 일으켜라, 눕혀라 하며 요구가 많았고, 또 그 요구에 응하느라 몹시 힘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가 신혼이었어요. 결혼해서 신혼여행 다녀온 이후로 그렇게 하루 종일 함께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집사람이 가고 난 후에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했어요. 외롭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면 빙그레 웃음이 나와요.”

그가 최선을 다해 부인을 돌보았던 일이 오히려 사별 후의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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